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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만 연다고 환자 받을 수 있나" 핵심은 배후진료 위기
기사 작성일 : 2024-09-01 07:00:36

응급실 앞 순서 기다리는 환자


서대연 기자

김잔디 기자 = "응급실 대책만 내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배후진료'가 안되면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니까요."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최근 논란이 되는 '응급실 뺑뺑이'의 핵심 원인은 배후진료 차질에 있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인력 부족도 문제지만, 응급실에서 처치한 환자를 병원 내에서 후속 진료하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는 게 현 사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중증 외상 환자가 응급실에 방문하면 응급의학과 의사뿐만 아니라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의사가 있어야 하고, 심근경색 환자가 내원하면 심장내과 또는 흉부외과 의사가 있어야만 환자에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이후 병원 내 인력이 급감하고, 각 진료과목 교수와 전임의들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최근에는 응급실 내원 환자에 대한 후속 진료가 원활히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에 병상이 있어도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이유다.

A씨는 "외상 환자가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응급실에서 처치 후 결국 외과 수술과 입원 등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배후진료가 안 되니까 환자를 못 받는 것"이라며 "응급실 의사들이 힘들어서 환자를 안 받는 게 아니다. 배후진료 역량과 시스템을 갖춰야만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 인력 부족과 저수가는 장기적으로 접근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당장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건 배후진료 부족인데, 정부가 그저 외면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배후진료가 다 무너져 있는데 응급실에 환자 받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그저 응급실에 환자를 받으라는 건 뺑뺑이 논란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전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지금 정부는 응급실에 관해서만 얘기를 하고 사실상 배후진료의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대책은 손을 놓은 것 같다"며 뚜렷한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경증환자 응급실 가면 본인부담


서대연 기자

A씨의 말처럼 단순히 당직 병원을 늘리고, 응급실에 환자를 배정하는 단순한 해법으로는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응급실 인프라와 인력 확충, 인건비 지원 등도 중요하지만 결국 환자가 진료와 수술을 받고 입원에 이를 수 있도록 배후 진료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병행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계는 응급실이 운영된다고 해서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과로를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있고 최종 치료를 제공해야 할 배후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며 "응급실이 문을 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심각한 정보 왜곡"이라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역시 "정부가 생각하는 응급실의 위기는 문을 닫는 것이고, 문만 열려 있으면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문을 열어도 기능을 못 하면 그게 위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장 의료진은 붕괴 직전 응급실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격을 드러내고 있다.

A씨는 애초 의사 5∼6명이 맡았던 업무를 1∼2명이 떠안아야 하는 고된 노동보다도, 눈 앞의 환자에 적절한 처치를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놓여있다는 심리적 어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A씨는 "당장 수술해야 하는 환자가 들어와 있는데 외과에서 수술 못 한다고 하고, 안 된다고 하면 응급의학과 의사는 진짜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의사로서 내가 어떤 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그 마음이 가장 힘든 지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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